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개정판 출간으로 불판이 펼쳐진 지금 내가 오구오구만 할 독자는 아니라서 참고삼아 이 책을 읽게 됐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일수록 더 매의 눈초리로 분석한다. 어떤 건 왜 좋고 어떤 건 왜 싫은지 알고 싶은 것도 있고, 비판점이 있다면 팬인 내가 더 잘 알아야 할 테니까. 책 제목부터 뭔가 B급스러워 평가절하 소지가 있지만 뼈 있고 수긍 가는 내용도 꽤 있다. 미나코의 통찰은 일본 만화를 보듯 잔재미 가득한 색다른 문예비평이어서 읽는 내내 재밌고 흥미로웠다.📎네지메 쇼이치는 초기 무라카미 작품을 가리켜 ‘다방 주인 문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버린 지금에도, 나는 그 초원의 풍경을 똑똑히 그릴 수가 있다. 며칠간 계속된 부드러운 비에 여름 동안 쌓인 먼지가 깨끗이 씻겨 내려간 산은 깊고 뚜렷한 푸름을 띠었고, 10월의 바람은 억새 이삭을 이리저리 흔들고, 얼어붙은 듯한 파란 하늘에는 가는 구름이 꼭 들러붙어 있었다."『노르웨이의 숲』 이렇게 노골적으로 서정적인 문장은 그때까지의 하루키 랜드와는 분명히 선을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새 손님을 대거 불러들였지만, 개점 당시의 오붓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단골손님 중에서는 ‘요즘 가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 언제나 손님으로 북적대지’ 하며 미간에 주름을 잡고 발을 돌리는 사람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단골손님을 위한 서비스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하루키 랜드. 『노르웨이의 숲』 다음 해에는 개점 당시(『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의 맥을 잇는, 그것도 상하 두 권으로 된 『댄스 댄스 댄스』(1988)를 출판합니다. 그리고 ‘하루키 현상’은 정점에 도달합니다. 📎"어느새 하루키 랜드는 게이머로 북적이는 커다란 오락실로 변모했습니다. 이제 무라카미 문학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가 그들을 위한 게임기가 되었으며, 그곳이 과거에 다방이었다는 사실 따위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그런 가운데 게이머 군단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찾아옵니다. 1994년에 드디어 대망의 신작 게임 『태엽 감는 새』 제1부와 제2부가 출시된 것입니다.아!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직 하루키 랜드가 다방에서 오락실로 변한 것을 모르는 고상한 손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태엽 감는 새』는 그런 손님들을 당혹게 했습니다. 그리고 평가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고 무책임하게 칭찬하는 사람들과 ‘이런 엉망진창인 다방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테다’라며 격분한 사람들로."
문학 거품기의 총아 무라카미 하루키부터
‘여성 시대의 기수’ 우에노 지즈코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 다치바나 다카시까지
‘문단의 아이돌’은 만들어진다!
문단 아이돌론 은 20세기 후반 일본문학 전성기의 스타작가 8인을 그 시대와 연결해 서술한 문예평론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듯 ‘문단의 아이돌’의 배후에는 그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저널리즘과 수많은 독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저자 사이토 미나코는 ‘문단의 아이돌’이 어떤 식으로 평가받고, 보도되었는가를 들여다보고 나아가 그렇게 논해진 이유를 고찰함으로써 그들을 만들어냈던 일본의 1980~90년대를 통찰한다. 제1부에서는 거품경제 시기에 경이로운 베스트셀러를 냈던 세 명의 작가(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 제2부에서는 ‘여성 시대’를 상징하는 두 명의 여성 논객(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제3부에서는 ‘작가’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분야에서 언론 활동을 펼친 세 명의 지식인(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을 살펴본다.
들어가며 | 아이돌은 만들어지는 것
제1부 문학 거품의 풍경
[ 무라카미 하루키 · 게임 비평 삼매경 ]
레벨 1: 우선 분위기 비평부터 | 레벨 2: 퍼즐을 풀어보자 | 레벨 3: ‘게임 도사’가 되어보자 | 레벨 4: 나도 공략본을 써보자 | 게임기의 스위치를 끈 후
[ 다와라 마치 · 불러라 춤춰라 J포엠 ]
다와라 마치는 중장년층 남성의 아이돌이었다 | 광고 카피 문화와 포엠 문화 | 유민의 세계관을 방불케 하는 언어 감각 | 미국적인 라이트 감각과 일본적인 촌스러움 | 씩씩한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청춘 문학 | J포엠의 전통과 유행
[ 요시모토 바나나 · 소녀 문화라는 지하 수맥 ]
급진적 문체와 보수적 내용 | 요시모토 바나나는 팬시상품 | 바나나 월드는 코발트 문학? | 작가 이름과 저자 후기라는 메타 메시지 | BANANA라는 수출품 | 여자아이의 나라에서 온 에일리언
제2부 여성 시대의 선택
[ 하야시 마리코 · 신데렐라 걸의 우울 ]
룰루랄라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자 가 안겨준 충격 | 여자의 계층 이동에는 엄격한 일본 | 추잡한 남녀 관계를 전문으로 그리는 작가? | 신데렐라 걸의 변절과 숙명
[ 우에노 지즈코 · 바이링갸루의 복수 ]
‘B형 지즈코’라는 착각 | 안에도 밖에도 일곱 명의 적!? | ‘A형 지즈코’가 승리한 까닭 | 마지막 우먼 리브 투사 | 선두 주자의 그 후
제3부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
[ 다치바나 다카시 · 신화가 된 논픽션 ]
가난한 르포라이터가 인기를 얻던 시대 | 부자 라이터가 가난한 라이터를 이긴 날 | 조직 연구에서 인간 탐구로 | 오타쿠와 건달의 줄다리기 | 다치바나 다카시의 약점 | 건달과 양아치의 세대 간 항쟁!?
[ 무라카미 류 · 5분 후의 뉴스쇼 ]
‘조잡 파워’의 존재감 | 와이드 쇼적인 안테나 | 두 명의 무라카미라는 픽션 | 작가가 픽션이라는 무장을 풀 때
[ 다나카 야스오 · 브랜드라는 이름의 사상 ]
미움받는 캐릭터 | 카탈로그 문화는 신형 르포르타주 | 브랜드=고유명사란 무엇인가 | ‘이다/입니다’의 만담 콤비 | 시골 소년의 ‘젠장할’ 주의 | 느낌 어쩐지 크리스털 화가 진행된 21세기 사회
나오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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