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책시렁 26《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손진은민음사1992.4.30. 오늘 우리가 잃거나 잊은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는 손짓기입니다. 먼저 사랑을 손수 짓는 길을 잃고, 삶을 손수 짓는 길을 잃으며, 마을이며 집을 손수 짓는 길을 잃습니다. 이러다가 옷이나 밥을 손수 짓는 길을 잊고, 노래랑 말이랑 이야기를 손수 짓는 길을 잃더니, 꿈하고 생각을 손수 짓는 길을 잊습니다. 옛날이 더 좋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얼마 앞서까지 우리는 누구나 집이나 옷이나 밥뿐 아니라, 삶도 사랑도 꿈도 손수 짓는 나날이었습니다.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를 읽으며 숲을 얼마나 설레게 돌아볼 만할까 하고 헤아리는데, 막상 숲을 다루는 글은 드뭅니다. 책이름에 낚였나 하고 생각했습니다만, 오늘날 이 나라 터전이야말로 이 모습 그대로이지 싶어요. 숲을 밀어내어 시멘트를 때려붓는 아파트를 잔뜩 지으면서 ‘푸른 마을’이란 이름을 붙이잖아요? 마구 삽질을 해대면서 ‘그린’이란 영어까지 끌어들여요. 큰 핵발전소를 더 짓거나 송전탑을 자꾸 박거나 바다나 갯벌에 위해시설까지 끌어들이려 하면서 ‘청정’이란 한자말을 붙이더군요. 시가 좀 투박하면 좋겠습니다. 문학이 참말 수수하게 풀내음이며 숲내음이 흐르기를 바라요. ㅅㄴㄹ바람이 불 때 / 우리는 다만 가지가 흔들린다고 말한다 / 실은 나무가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시/15쪽)바다로 가려다가 산을 택했다 / 오랜만에 벗어났음인지 모두들 싱글벙글 / 두 손을 입에 대고 야 하고 소리치니 / 저쪽 산이 야아아 되받는다 (메아리/54쪽)(숲노래/최종규)
손진은의 시는 우리나라 시문학 전통으로 보아 드물게 존재론적인 시 세계를 갖고 있다. 그는 다만 축어적 표현으로 사물 혹은 시인의 존재를 열어 놓기 를 갈망한다. 만일 손진은에게 존재를 여는 시인 이란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그가 미래를 사실성·일상성 속에 끌어들여 와 현존 자체를 순간적으로 여는 언어 행위 때문일 것이다. 손진은은 우리가 가진 주관적 인식의 틀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그는 인식론 자체를 비판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눈을 포함한 인간의 감각, 감각을 거쳐 사고에 이르는 과정, 결과를 회의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 나타난 사물, 사람들은 시간 속에서 시간과 더불어 시간을 통해 거주하면서 그의 시작(詩作)에 의해 열리고 살아남는다. 손진은의 시는 시를 위한 시, 시에 의한 시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의 시는 메타 시이다. - 김혜순(문학평론가)
숲 - 서시
집 1
미루나무
콩깍지 혹은 집
시
저물 무렵
꽃피는 소리
장작 패기
콩나물
중심, 도처에 우글거리는
먼지의 유혹
집 2
개
그늘
집 3
초당독서도
기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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